삼성전자 '반도체 치킨게임' 시작했나
치킨게임(chicken game)이란, 어느 한쪽이 이길 때까지 피해를 감수하고 경쟁을 벌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치킨(chicken)은 ‘겁쟁이’를 뜻합니다. 영어로는 'Game of Chicken', 'Snowdrift game' 등으로도 불리며 'chicken race'가 일상에서 가장 잘 쓰입니다. 자본시장에서는 기업들끼리 저가 출혈 경쟁을 벌여, 경쟁자가 떨어져 나가면 남은 기업들이 시장을 차지하는 것을 뜻한다.
2000년대와 2010년대 독일과 일본 메모리반도체 기업을 무너뜨린 ‘반도체 치킨게임’이 다시 시작되려고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반도체 후발주자인 대만과 일본 기업이 주축이 됐다면, 이번에는 메모리 1위 삼성전자가 시작하려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반도체 침체 속에 시장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됩니다.
제1차 치킨게임, 독일 키몬다(Qimonda) 파산
2007년 대만의 D램 업체들은 점유율 향상을 위해 생산량을 늘리면서 극단적인 가격인하 정책을 펼쳤습니다. 시장 공급과잉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당시 주력 상품이던 512Mb D램 가격이 0.5달러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3년 전인 2004년 해당 제품의 가격은 6.8달러였는데, 10분의 1 이하로 폭락한 것입니다. 이 시기 1Gb DDR2 D램 가격도 0.8달러 수준으로 주저앉았습니다.
이 치킨게임으로 당시 시장 점유율 2위였던 독일 D램 제조사 키몬다가 파산했습니다. 2006년 인피니언의 자회사로 출범한 키몬다는 파산 직전 시장 점유율이 5% 수준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키몬다는 2008년부터 순손실이 매출보다 커졌고, 2007년 3분기부터 2008년 4분기까지 누적 적자가 3조 원 이상이었습니다.
제2차 치킨게임, 일본 엘피다(Elpida Memory) 파산
2010년대 들어 다시 반도체 치킨게임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도 대만의 반도체 업체가 주도했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생산설비 투자를 선언하며 증산을 시작했습니다. 극단적으로 펼쳐진 출혈경쟁에 당시 주력제품인 1Gb DDR3 가격이 2010년 10월 1달러를 밑돌았습니다.
이번에 타깃이 된 회사는 일본 D램 업체인 엘피다였습니다. 당시 점유율 3위의 기업으로, 2011년 4분기부터 본격 적자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엘피다는 1차 치킨게임 때도 2년간 2조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업계는 2009년 키몬다 파산 당시 엘피다의 동반 파산을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수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일본 은행권은 1조 원 이상의 융자로 당시 엘피다를 살려냈습니다.
반도체 1위 삼성전자 “감산 없다”, 제3차 치킨게임의 서막
20여곳에 달했던 D램 업체는 두 번의 치킨 게임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미국) 등 이른바 빅 3 체제로 정리되었습니다. 2014년 반도체 시장 불황이 찾아오면서 다시 치킨게임이 예고됐으나, 출혈경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경험으로 “공멸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최근 반도체 시장 불황으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키옥시아가 감산과 투자 축소를 선언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1위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시장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도 감산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미 이뤄놓은 원가절감 능력이 상당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업계는 삼성전자의 이런 입장을 제3차 치킨게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장 공급과잉 국면에서 ‘감산을 통한 수요 제한’, ‘감산 없이 경쟁’이라는 두 선택지 중 삼성전자는 후자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또한 투자 축소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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